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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시·수시 말고 '대학 안 가도 행복한 사회' 고민해야"

2019-11-11 16:59:42, Hit : 17
작성자 : 관리자

“수능 대박!” 해마다 11월에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그날이 되면 고사장 입구에선 후배들의 응원 소리가 터져나온다. 경찰차·오토바이의 ‘수험생 호송작전’은 뉴스의 단골 소재다. 시작종이 울리면 두 손을 모은 부모들이 교문 앞을 지킨다.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수험생들이 한창 문제풀이에 몰두할 때,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하는 청소년들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대입 공정성’을 이야기한다. 정부는 정시와 수시의 황금비율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교육이 입시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은 변할 기미가 없다. 한국사회를 떠다니는 ‘공정성’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 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은 수능일인 11월 14일 아홉 번째 선언에 나선다. 투명가방끈은 2011년부터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교육에 반기를 들고 대입을 ‘거부’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대학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여야 한다”면서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한,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말한다. 2017년부터 대입 거부선언에 참여한 ‘투명가방끈’ 상임활동가 장주연씨(20), 지난해 선언을 한 성윤서씨(20), 올해 처음 선언에 동참하는 안윤재군(16)을 11월 6일 서울 마포구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대입 거부’를 선언했나.

주연 “우리는 단순히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입시경쟁이라는 구도를 거부한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를 압박하는 경쟁에서 내 권리를 찾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윤재 “대학에 안 가면 ‘낙오자’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말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많은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윤서 “우리가 학교 안에서 느꼈던 감정을 졸업하면서 그냥 묻어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분노를 최대한 표출할 수 있는 행동 중의 하나가 거부선언이다. 매년 거부선언은 이어지고, 많은 사람이 청소년들의 현실을 지적하지만 매번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게 안타깝다. 입시에 몰두하는 현실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무디게 받아들이는 걸 수도 있다. 입시에 불복종한다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장주연 “우리가 여기 있다.”

장주연 “우리가 여기 있다.”

대입을 거부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주연 “성적이 상위권이었는데, 고2 겨울방학 때 우울증이 심해졌다. 증상 중의 하나가 독해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고3을 앞두고 공부가 안 되니까 두려웠다. 유일하게 자신있던 게 공부였는데 그 능력을 잃게 되니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성적에 연연해야 했을까, 그것만이 날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다. 학력·학벌에 휩쓸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윤서 “원래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삶이 너무 궁금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대학이고, 대학에 가지 않으면 가치없다고 여기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결국 수능을 봤다.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이게 뭐지?’ 하며 인생을 뒤돌아보게 됐다. 여기까지 와서 선택하는 게 재수인가. 결국 한 달 정도 더 공부하다가 그만뒀다.”

윤재 “우리 사회는 ‘학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걸 혐오한다. 청소년들은 학생의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공부를 못 하거나, 틀에 어긋나는 사람이면 슬퍼할 수밖에 없다. 그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밖엔 방법이 없더라. 올 초 고등학교를 그만뒀고, 지금은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산다.”

‘공정한 입시제도’ 논의로 시끌시끌하다. 대입 거부자가 보는 시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주연 “‘정시 올려, 수시 올려.’ 청기 백기 게임 같다. 학생을 성장시키고 삶에 와닿게 하는 교육을 이야기하는 방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까다롭고 엄중하게 등급을 매길 수 있나에 치중하는 것 같다.”

윤서 “출발선의 격차를 줄이려 대입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나. 그런데 입시제도가 달라진다고 출발선이 비슷해질까,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공교육에서 하고 있는 게 대체 뭘까 고민하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떻게 해도 공정한 경쟁을 찾아보기 힘들다.”

안윤재 “내 가치는 점수화할 수 없다.”

안윤재 “내 가치는 점수화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겪은 입시를 떠올려본다면.

주연 “수시 비율이 높을 때였다. 윤리교육학과를 가고 싶어 그것과 관련된 책만 읽었다. 학생부에 독서 관련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대외활동을 신청했다가 시험기간이라 중도에 포기했는데 최우수상을 받은 적도 있다. 상위권 학생은 스펙이 좋아야 하니까 준 거다. 정시 비율이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애들은 ‘학원에 등록해야 하나’ 고민한다. 정시로 가려면 돈을 써야 한다. 수시는 교사 평가가 중요하다보니 학교 안에서 모든 행동이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대학입시를 위한 수시, 정시만 따질 게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을 이야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윤서 “나도 학교에서의 삶이 거짓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입시와 관계없이 내가 진짜 관심있는 활동으로 학교생활을 채워보자고 생각했지만, 입시가 최우선인 환경에선 힘들었다.”

차별이나 삐딱한 시선과 마주하고 있진 않나.

윤서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주변에 주는 불안감이 있나보더라. 어른들의 반응이 조금 힘들었다. 지난해 수능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설득 반, 고함 반’의 시기를 거쳤다. 사실 사람들의 인식은 나한테 작은 부분이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주연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 면접을 갔는데 학력이 중졸로 돼 있으니까 거짓말을 해야 했다. 꿈이 예·체능 쪽이고, 해외 유학을 고민 중이라고 둘러댔다. ‘그래도 학교는 다 나와야 사람이 되는데’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약국에서 일할 땐 대학생 알바생들이 같이 일하는 50대 아주머니를 두고 ‘배운 것도 없는 아줌마’라고 하더라. ‘내 미래가 아닐까’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저학력자와 고학력자가 갈 수 있는 직업 선택지와 대우가 다르고,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르다. 대학이 이 세계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윤재 “10대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겪는 차별이 와닿는다. 나를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생으로 본다. ‘학교 밖 청소년’은 아예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성윤서 “나를 거부하는 사회를 거부한다.”

성윤서 “나를 거부하는 사회를 거부한다.”

대입을 거부한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지.

주연 “엄청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다양한 모임을 통해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산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가 지긋지긋했는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내가 이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싶더라. 하지만 모든 대학 거부자들이 잘 사는 건 아니다. 대입 거부선언이 누구의 압박을 받지 않은 나만의 선택일 수만은 없다. 등록금이 없어서, 성적이 낮아서 등 주체적으로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를 뱉어내는 교육’ 때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윤서 “내가 이런 삶을 살겠다는 비전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청소년·환경·여성 등의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더 알고 싶은 게 많다.”

윤재 “당연하다고 생각한 편견이나 차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소수자가 받는 대우를 생각하면 앞이 아득해진다. 그래도 이제야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행복한 사회란 뭘까.

주연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서 대학에 보낸다는 점에서 학교는 공장 같다. 그래서 우리가 파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납품되는 존재’가 되지 않는 것이 대학에 안 가도 괜찮은 사회가 아닐까.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역할을 하지 않고, 교육으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학교 말고도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공간, 비진학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입 거부선언을 했던 분 중에 고립감을 못 이기고 결국 대학에 가신 분도 있다. ‘배운 거 없는 아줌마’와 같이 차별대우, 혐오표현 규제할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하루빨리 제정되길 바란다.”

윤서 “내가 대학 거부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해도 여러 요인 때문에 제도로부터 튕겨나왔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제도망이 쿠션처럼 폭신폭신해야 튕겨났을 때 다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 제도에서 벗어나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회,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포함해 다양한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아홉 살짜리 동생은 내가 청소년기에 느꼈던 ‘울컥’과 ‘분노’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 수능일에 꼭 하고 싶은 한마디는.

주연 “‘우리가 여기 있다.’ 이 사회에는 대입 거부자들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또 ‘불안하고 불행한 우리의 내일을 바꾸자’고도 하고 싶다. 거부선언을 하는 건 우리가 우리의 내일을 직접 바꾸자는 의미니까.”

윤서 “‘나를 거부하는 사회(또는 대학, 교육)를 거부한다.’ 그냥 무디게 살 땐 내가 사회에서 거부당한다는 걸 잘 모른다. 자세히 보면 정말 냉정하고 엄격한 시스템에서 부모가 돈이 많지 않다, 공부를 못 한다 등의 이유로 탈락하고 좌절한다.”

윤재 “‘내 가치는 점수화할 수 없다’로 정리하겠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091031001&code=940401#csidx5effc45aae21c6ba5c7aa233ea55a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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